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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암 이태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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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7-02-03 00:00 조회7,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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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함안의 진산 여항산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그 장엄하고 어엿한 호연지기의 영향 아래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선생의 유연하고 늠름한 자세나, 그 인자한 몸가짐이 모두 여기서 온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갖 진산이 어찌 사람의 심혼을 좌우할 수 있겠습니까?
유시에는 향리 서당에 적을 두어 공맹의 도를 닦았고, 자라 보통학교에 전입하여서는 스승의 실을 택하여 대구사업에 지망하였으며, 영남의 수재가 필봉을 겨누던 이곳에서 초시에 급제하여 가문과 향리에 이름을 일시에 영남 하늘에 드날렸습니다.
대구에 진학한 선생은 그제야 하늘이 본인에게 내리신 사명을 깨달아 위로 공맹의 대의에 보답하고자 아래로 조상의 은공을 갚기 위해 몸을 흔연히 조국의 제단에 바쳐 마침내 만민의 우러럼이 되었습니다. 신혼 초초에 영부인과 헤어지시고 누대 독자로서 아버님의 정훈에서 떠나 기제사를 뒤로하고 대전의 연옥에서 겪은 살을 굽고 뼈가 얼기 4년, 선생은 기나긴 고초를 겪었습니다. 해방 후의 반세기는 선생에게는 너무도 힘겨웠습니다. 집에 들면 교재 연구에 바쁘고, 나서면 훈도에 겨를이 없었으며 그러면서도 틈을 내어 혹 대학에서〈한문〉을 지도하시고 혹 국가의 번역사업에 정성을 쏟았고 광복회를 살피고 한글학회를 돕고, 외솔회를 이끌고 〈한문고전연구회〉에 앞장서고 참으로 다난한 반세기였습니다. 이 속에서도 선생은 또한 한편으로 조상의 영광스러운 얼을 들내기 위해 「파한집」을 우리말로 옮기셨고, 근간에는 「화랑세기」를 국역하여 역사의 문을 낮추어 주셨으며, 다시 엄연한 진퇴를 알려주기 위해 교직에서 물러나셨으니, 선생은 과연 유학이 말한 군자의 길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돌아보면 민족의 운명은 백척의 간두에서 가물거리고 조상이 남긴 수없는 슬기는 한적 속에 묻혀 있습니다. 나아가서 세상의 슬기를 알리고 물러나서 쌓인 고서를 우리말로 옮기며, 때를 아껴〈공맹의 도〉를 밝혀 민족의 큰길의 횃불이 되어 주십시오.

※수상자 저서「긴 삶 숱한 고비」내용 중 박지홍 글 “여암선생의 고희를 축하합니다”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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