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기자의 피플&] 거침없는 독설로 사회에 큰 울림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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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지 않고 당하는 것만 같은 삶이 행복할 수도 있다오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아이들 교육에 답이 있는 건 아니다. 뭐든지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작은 사진은 이달 초 부산흥사단 '제15회 존경받는 인물상' 시상식 모습. 강원태 기자 wkang@

"평범하고 시시한 삶이 행복한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 경쟁에 속아 가지고 잘난 체하고 남을 딛고 올라서야 사는 거 같고, 시시하면 당하는 것 같지만, 시시한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오. 조금이라도 남 짓밟으면 행복하지 못해요."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란 말로 지난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던 채현국(80) 효암학원 이사장. 거침없는 독설과 서릿발 같은 일침으로 '시대의 어른'으로 우뚝 선 채 선생(이사장이라는 호칭을 싫어 한다)을 경남 양산시 개운중학교 교장실에서 만났다. 채 선생은 이달 중순 부산흥사단으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상'을 받기도 했다.

한때 소득세 납부액 전국 10위 거부
돈도 너무 많이 벌리니 겁나더군
20여 개 회사 정리, 직원들 나눠줘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간 셈이지

타인 삶의 내비게이션 되는 건 질색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배우고 싶도록 만드는 게 선생 역할


채 선생은 한때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10위 안에 들 만큼 거부였으나 73년 20여 개나 되던 회사를 정리하고 재산은 모두 직원들에게 나눠 줬다. 부친은 독립운동가를 도왔고 채 선생은 민주화 인사들을 남몰래 지원했다.

"내가 시시하니까 그동안 얼마나 게으르고 편안하게 살았는데요. 근데 얼굴 알아보기 시작하니까, 날 좋다고 하는데, 속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조언해 준다는 것, 도움되는 것 같아도 다 독입니다. 과일 좀 커진다고 농약 뿌리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꼴이에요."

채 선생은 출셋길이 있다면 살짝살짝 피하라고 지적한다. 잘해서 쓰임을 당하면 아첨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고. 채 선생은 "이 세상에 선생님이라고 정해진 사람 중엔 선생님은 없다"며 자기 자신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학교는 어떻게 운영할까.

"옛날 학교 다닐 때 교장선생님 훈화·교훈이 생각 나요? 안 나죠. 선생님의 어떤 행동이나 모습에서 느낀 것만 생각나잖아요. 내가 발견하고 깨달은 거니까 생각나는 거지요. 아이들이 나를 보고 혹 느끼는 것이 있다면 아마 '겉껍데기 보고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되겠구나'하는 것을 배우겠죠."

아이들이 학기 초에는 교정을 어슬렁거리며 쓰레기도 줍는 저 할아버지는 누구지, 하다가 몇 개월 지나면 이사장인 줄 알게 된다고. 높은 사람이 하는 일과 낮은 사람이 하는 일이 구분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고정관념이 조금씩 깨진다는 설명이다. 그것이 채 이사장식 교육이라면 교육이다. 흥국탄광 정리할 때 사모님 등 가족과 의논했는지 물어 봤다.

"그런 건 절대로 의논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깥일은 참 독선적이죠. 내가 뭐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혼사유일 겁니다. 의논하면 분명히 '딴소리' 나오니까, 아예 안 하지요. 그 외에는 다 집사람 말 따라요. 2남 2녀를 낳았는데 공부하라 마라 한 적도 없어요. 아이들이 독자적인 생각으로 자유롭게 살기를 항상 바랐어요. 난 남의 내비게이션 되길 원하지 않아요."

채 선생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간섭 안 하겠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강조한다. 이 세상에는 정답은 없다는 입장이다. 무수한 해답만 있을 뿐이라고. 정답은 거짓말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옳고 그 사람이 틀렸다는 생각을 어떻게 안 하고 살까"가 항상 고민하는 숙제라고 강조한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게 할 일이에요. 가르치려고만 하고 성공하라고만 요구하는 것, 선생·부모로서 할 짓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가지고 상상력을 가지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배우고 싶게 만드는 것,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을 만드는 게 선생님의 역할입니다."

부산흥사단 제공
채 선생은 "돈 쓰는 재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 버는 재미"라고 말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고. 흥국탄광 시절 한 달 순이익이 100만 달러가 넘었다. 이자를 아무리 물어도 회사가 막 늘어났다는 것. 두려웠다고 한다.

"광업소 소장했던 박윤배가 내 중학교 동기동창이지요. 윤배가 피신해 온 사람들 다 받아서 먹이고 재워 줬지요. 서울대 후배였던 김지하도 그중 한 명이었죠. 오적 등 여러 시를 썼지만 내가 볼 땐 잘 쓴 시는 아닌 것 같아요. 단지 뛰어난 점은 판소리 분위기를 우리 현대시에게 잘 살렸다는 거지요."

채 선생은 시·소설 등 언어예술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시·소설을 쓰는 사람은 늘 잘 쓰지는 못한다는 것. 배우나 성악가나 춤꾼은 아무리 못 해도 일정한 수준을 항상 유지하는데 시나 소설은 그렇지 못하다고. 잘했다 못했다를 반복한다고. 춤이나 노래나 연기는 몸에 배어 있고 몸이 기억하는 데 반해 시와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통은 크지만 늘 잘하지 못하는 게 숙명이라고.

"난 시 공부하는 사람하고 친구 안 해요. 시 한 줄에 목숨 거는 사람은 내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말짱 계산된 시지요. 민요·노동요·동요는 목숨 걸고 쓴 게 아니지 않소. 시인들은 또 시시한 이야기 쓴다고 소설을 낮추봐요. 읽을 줄도 모르고 읽지도 않아요. 시시한 게 인생인데 말이예요."

채 선생은 어릴 때는 소월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고시·시조·한시도 좋아한다. 현대시 중엔 김수영도 좋고 박재삼도 좋단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이야기를/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박재삼·울음이 타는 가을강). 후배 김민기 노래도 좋아하지만 유행가 가사도 좋아한다. 절절하기 때문이다.

채 선생은 젊은이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젊으니까 비판적이기 쉽지만 어떤 조건 속에서도 삶 자체를 존중할 줄 아는 게 필요하다고. 쓸데없는 가치관에 휘둘리고 쫓아다니고 바보가 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채 선생은 기자에게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글귀와 사인을 해 줬다. 쓴맛마저도 사는 맛으로 느껴질 만큼 긍정적으로 살라는 뜻이라고. 그러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 준다.

"사탕 하나도 나눠 먹기 싫어 했고 야멸차고 1등하는 거 좋아했던 질 나쁜 아이가 1953년에 변했어요. 형님 자살 때문에 확 변했습니다. 형님 삶까지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지요. 형님과는 엄마가 달라요. 엄마는 당신의 친아들이 죽었는데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고마워했어요. 한결같이 대했지요. 긍정적인 삶을 알게 해 주신 분이지요.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유일한 분입니다."

채 선생은 사회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 사업체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 욕심만 채우고 살면 이미 재미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 뿐이라고. 본래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기득권 포기 아니냐는 말에 손사래를 친다. 채 선생은 "농약에 속으면 안돼, 속지 마"라고 덧붙인다. 멀리서 왔다고 밥을 사 준다.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갖고 있다. 준엄한 비판을 가하지만 이내 속삭이듯 시를 이야기하고 철학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이야기한다. 헤어질 때 두 손으로 하트를 그려 준다.

soney97@busan.com


채현국 이사장은

1935년 대구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61년 중앙방송(현재 KBS) 연출 1기로 입사, 3개월 만에 그만뒀다. 60~70년대 부친과 함께 흥국탄광 등 20여 개 기업을 운영, 한때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10위 안에 들 만큼 큰돈을 벌었다. 73년 회사를 정리하고 재산은 직원들에게 모두 분배했다. 1988년부터 경남 양산에서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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