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현국 선생 구술 기록·해설 "인생이 쓸 때 삶은 깊어진다"…비틀거리는 인생의 길라잡이

달콤한 인생을 꿈꾸는 이들이 많을 법한 세상. 그런데 쓴맛이 살아가는 맛이라고, 어려움이 있어야 삶이 깊어진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지난해 초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는 제목의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로 화제가 된 효암학원 이사장인 채현국(81) 선생이다. 그는 시대의 어른으로 부각되며 젊은이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정운현 팩트TV 보도국장은 어른을 '꼰대'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늙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채현국 선생의 구술을 기록한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책을 썼다고 밝혔다.

앞서 채현국 선생에 관한 기록을 책으로 묶은 <풍운아 채현국>(김주완, 도서출판 피플파워, 1만 2000원)이 채현국 선생의 인터뷰집이라면, <쓴맛이 사는 맛>은 채현국 선생의 구술에 대한 저자의 해설집에 가깝다. 저자는 채현국 선생이 발언한 내용의 의미를 되짚었다. 책은 1, 2, 3부로 나뉘었다. 1부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 편에서는 왜 대중이 선생에게 열광하는지를, 2부 '분노하라, 저항하라'에서는 채현국 선생이 청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3부 '비틀거리며 살아왔지만'은 선생의 지나온 삶을 자전 형식으로 엮었다.

왜 '쓴맛이 사는 맛'일까. '쓴맛이 사는 맛'은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효암고등학교 정문 왼편 비석에 새겨진 말이다.

채현국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으뜸은 자기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남도민일보 DB

저자는 "쓴맛이 사는 맛이라니, 비관론이 아니냐는 질문에 선생은 오히려 '적극적인 긍정론'이라며 반박한다. 쓴맛조차도 사는 맛이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삶은 깊어진다면서 말이다. 그게 다 사람 사는 맛이란다"고 밝혔다. 채현국 선생은 인터뷰어가 "그럼 비문에 '쓴맛이 사는 맛이다' 이렇게 새기면 어떻겠냐고 물으니까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만 하면 나더러 위선자라고 할 테니 뒤에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하고 덧붙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한다. 여기서 '단맛'은 '사람'이다. 선생이 "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그땐 참 달다"고 했다는 것.

선생의 행복에 대한 생각이 행복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게끔 한다.

"선생은 시시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총체적으로 한가로운 것이 시시한 것이다. 비록 몸은 부지런해도 잠재의식이 한가롭다면 시시할 수 있다. 이때 잠재의식이 한가로우려면 행동은 정말 단순하고 소박해야 한다고 선생은 말한다. … 시시하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이다 보니 파격적이지 못할 뿐이다."

행복의 기준이 그러하다 보니 인생의 좌우명도 없다. "나는 좌우명 같은 것들을 없애려고 노력해왔다. 이유는 하나다. 모두 '분칠' 같아서다. 지식이라는 것, 뭘 안다는 것 또한 삶을 분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언이나 좌우명 같은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농약, 화학비료 같은 것이 되고 만다. 사람은 순박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소박함, 순박함 같은 것을 모두 날려버린다."

쓴맛이 사는 맛(정운현 기록)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으뜸은 자기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날 배짱과 뻔뻔함을 가지고 함께 잘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방황을 겁내지 말라고도, 임금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도, 불의를 보면 떨쳐 일어나라고도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이렇게 채현국 선생이 가감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었던 토대는 그의 삶이다. 1935년생인 그는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방송국(KBS의 전신) 공채 1기 연출직을 3개월 했다. 박정희 정권 미화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하자 견디지 못했다. 이후 아버지가 운영하던 흥국탄광을 운영하며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거부가 됐지만, 돈이 신앙이 되기 전 그만둔다. 탄광을 운영할 당시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8년부터 아버지가 인수한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있다. 자신이 4살 때 아버지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게 되면서 남아있던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 휴전 협정 당일 형의 자살 등의 아픔을 겪었다. 백낙청, 리영희, 임재경, 남재희, 이우환 등의 인물들과 인연도 있다.

채현국 선생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비틀비틀하며 살아온 인생이다. 또 비겁하게도 살아왔다. 어디 내놓을 게 없는 사람이다. 내가 뭘 이룬 게 있다면 그건 나 혼자서 한 게 아니다. 여럿이서 다 같이 함께한 것이다."

책 곳곳에 삶이 녹아 있는 지혜로운 말에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215쪽, 비아북,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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